4.19혁명 국립묘지
진정한 민주국가로의 발전을 토대로 자유 민주 정의로 함축되는
1960년 4.19혁명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곳이다.
국립 4.19혁명 민주묘지는 1995년 김영삼 정부에 의해 성역화 사업과
국립묘지로의 승격이 이루어졌다.
오랫동안 "의거"나 "4.19"로 불리던 4.19혁명에 대한 평가가
1993년에 이르러 비로소 그 의의와 정신이 재조명되어
"4.19혁명"으로 정당한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되었으며
그 결과 그동안 공원묘지로 서울시에서 관리해 오던
4.19묘지도 성역화 사업을 거쳐 1995년 4월 19일(4.19 35주년)
국립묘지로 승격되었다.
언제 :2010년 4월 20일 누구와 : 나 홀로 날씨 : 흐림
4월 학생혁명 기념탑
국립 4.19묘지 입구에 있는 민주성성(民主聖城)
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국립 4.19민주묘지 정문.
국립 4.19민주묘지 안내도
안내 이정목
4.19국립립묘지에서 바라본 북한산 암봉!!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넘실거린다.
4.19영령들의 "상징문"
4월 영령 "참배".
경건한 마음으로 고귀하신 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4.19의거에서 4.19혁명으로, 4.19묘지에서 4.19국립묘지로 승격시켰다.
그때부터 김영삼 대통령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4.19국립 묘지는
선열들의 넋이 살아 쉼 쉬는 경건한 장소이다.
4.19혁명 투사"는 자유, 민주, 정의에 용감했다.
4.19혁명의 정신은 자유, 민주, 정의.
다목적광장엔 "수호 예찬의 비"에 애절한 글귀가 있어요.
4.1혁명은 자유, 민주, 정의를 외치며 고교생과 대학생들이 주측이되어 일어났다.
그때 그 시절 그 모습들이 아롱거린다.
정치, 사회 모두가 썩는 냄새가 진동하여
참다못해 학생들이 일었다.
4.19혁명의 정신은 자유, 민주, 정의이다.
민주, 자유, 정의를 위해 학생들은 용감했다.
학생들은 목숨을 바쳐 이룬 혁명은 고귀한 영령들의 뜻을 이어 받지 못하고
사회 불안으로 인하여 5.16쿠데타가 일어났다.
유 영 봉 안 소.
영령들의 위패가 모셔있는 "유영봉안소" .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합시다.
고귀하신 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유영봉안소에는
4.19혁명으로 희생되신 영령들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곳입니다.
그때를 회상하니 눈물이 납니다.
영령들의 위패와 영정이 모셔있는 "유영봉안소"와
영령들이 잠들고 있는 국립 4.19민주 묘지.
4.19국립 묘지는 선열들의 넋이 살아 쉼 쉬고 있는 경건한 장소이다.
그때 그 모습들이 아롱거린다.
친구 묘지를 찾아올 때면 마음이 울적해요.
고귀하신 영령들이시여!!
고이 잠드소서.
4.19영령들은 일명 카빈총과 권총에 맞아 쓰러저 운명했다.
부정부패로 얼룩진 투표 봉투.
부정부패로 얼룩진 투표용지.
그 당시엔 대리투표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투표용지 바꾸어 치기도 했어요.
이해가 안 가지요? 사실이에요.
4.19국립묘지 전경.
영령들의 위패가 모서 있는 "유영봉안소".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합시다.
4.19혁명도 벌써 50년이 되었네요.
4.19정신의 "정의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그때 그날이 주마등같이 스쳐간다.
-4.19혁명은 이렇게-
1960년 2월 27일 대구 학생시위,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 1960년 3월 15일 마산의거,
1960년 4월 18일 고대 시위, 1960년 4월 19일 학생, 시민혁명 시위, 1960년 4월 25일 교수단 시위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은 부산 정치파동, 사사오입 개헌, 반대 세력에 대한 폭력 등
온갖 부정과 탄압을 일삼아 왔기에 학생들이 주동 되어 일반 시민과 함께 항거하여
결국 1960년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하고,
5월 29일 미국 하와이로 망명하여 거기서 생을 마감했다.
참 비극의 역사이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나날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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