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의 일대기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후면으로 가면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이야기"
전시장 출입구가 있다.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장군은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명장이다.
투철한 조국애와 뛰어난 전략으로 위태로운 나라를 구한 장군 이순신,
그는 수많은 시련을 묵묵히 극복하면서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살아왔다.
크고 작은 해전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던 이순신 장군의 불멸 기록은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대중교통: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
언제: 2010년 02월 16일 누구와: 집사람 날씨: 흐림
1957년에 정유재란이 일어난 뒤 일본에서 오는 기요마사를 공격하라는
조정의 명령이 이었는데 적의 간계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여 주저한 것이
문제가 되어 감옥에 가기도 하였지만 조선 수군이 칠천량에서 패배하자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명량에서 불과 13척의 병선으로 왜선을 크게 격파하였다.
1598년에 물러가던 왜군을 노량에서 공격하다가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이때 "싸움이 한창이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라는 마지막 말씀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1968년 4월에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리고자 이 자리에 동상을 세웠고
2010년에 동상의 균열로 인하여 보수 보강하여 다시 세웠었다.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에게 내린 시호(諡號)는 "충무"(忠武)다.
내 몸이 위태로워도 위를 받드는 것을 "충"(忠)이라 하며,
쳐들어오는 적을 물리쳐 치욕을 막는 것을 "무"(武)라 한다는 뜻의
충무 무관에게 가장 영예로운 "시호"였다.
이순신 장군의 공적은 시대가 흐를수록 더욱 높이 평가되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난중일기 중에서)
이순신 장군의 무과 급제 고지
충(忠)
혼자 수루에 앉아 나라의 정세를 생각하니, 이슬처럼 위태롭기만 한데
안으로는 정책을 결정할 인재가 없고,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 인물이 없으니
나라가 앞으로 어찌 될지 마음이 산란했다.(이순신장군의 글)
임진왜란 때 해전에 관한 이야기가 상세히 전시되어 있다.
자녀들의 교육 자료로 훌륭합니다.
싸움이 한창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노량해전 중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말씀)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에서 전략 작전지시하는 모습.
사부(射夫)의 활 쏘는 모습.
화포장(火砲匠)의 모습.
55% 축소된 거북선 내부 모습.
전투 전력의 모습.
이순신 장군은 해전에서 단 한 번 도 패한 적이 없는 명장이다.
이순신 장군의 해전 무기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장검 위력이 대단해 보인다.
키가 6척이라 하니 그만한 긴 칼이 제격이겠죠.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장군은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명장이다.
투철한 조국애와 뛰어난 전략으로 위태로운 나라를 구한 장군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업적은 후세의 귀감으로 기리 보존해야 합니다.
자녀들의 교육장으로 아주 훌륭합니다.
한번 들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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