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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육조거리

한영해

by 한영해 블로그 2025. 3. 21.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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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은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

 

서울의 중심이자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세종로에 광화문광장을 조성하였다.

광화문광장은 육조거리!!

한국의 대표 광장(세종대왕 동상), 도시문화광장(이순신장군동상),

도심 속 광장(바닥분수대), 청계천 연결부, 경복궁과 북한산을 바라보는

자연경관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과 "서울 시티투어" 시발점이다.

조선시대 육조거리에 여섯개의 부처가 있었다.

 1) 이조(행정자치부), 2) 호조(재정경제부), 3) 형조(법무부), 4) 병조(국방부),

5) 예조(문화관광부), 6) 공조(건설교통부)의 육조(六曹)가 광화문광장 좌우에 있었으며

조선시대의 육조거리에서 임금과 온 백성이 더불어 함께 했던 역사가 깃든 공간에

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상호 존중하며, 배려하는 인간 중심, 문화중심의

광장을 새롭게 만들어 나라의 상징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충무공(이순신) 동상이 늠름하게 서 있는 이곳에 한글 창제 등 민족문화를 꽃피우신

세종대왕 동상도 모셔 있습니다.

언제: 2010년 02월 16일 누구와: 집사람 날씨: 흐림

찾아 오는 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 

 

이순신 장군 동상

충무공 이순신은 1545년 3월 한양 건천동에서 태어났다.

1576년에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591년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되어

일본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옥포에서 첫 승리를 거두고 이어서 거북선을 앞세워 사천,

한산도, 등지에서 왜선을 무찔렀다.

이로써 초반에 불리했던 전세(戰勢)를 크게 회복하였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최초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1957년에 정유재란이 일어난 뒤 일본에서 오는 가토 기요마사를 공격하라는

조정의 명령이 있었으나 적의 간계에 빠지는 것이 아니가 하여 주저한 것이

문제가 되어 감옥에 가기도 하였지만 조선 수군이 칠천량에서 패배하자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명량에서 불과 13척의 병선으로 왜선을 크게 격파하였다.

1598년에 물러가던 왜군을 노량에서 공격하다가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이때 "싸움이 한창이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라는 마지막 말씀을

남기시고 돌아가셨다.

1968년 4월에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리고자 이 자리에 동상을 세웠고,

2010년에 동상의 균열로 인하여 보수 보강하여 다시 세웠다.

 

세종대왕(조선왕 충녕대군)

1397년(태조 6년)~1450년(세종 32년), 조선의 4대 왕(1418~50재위)

현 광화문광장 조선시대의 육조거리로 임금과 온 백성이 더불어 함께 했던

역사가 깃든 공간에 시민의 삶과 질을 향상시키고, 상호 존중하며, 배려하는

인간 중심, 문화중심의 광장을 새롭게 만들어 나라의 상징로로 거듭나게 되었다.

집사람과 조선시대 궁궐 경복궁 관람하고 육조거리로 와 광화문광장 지하에

선조들의 역사자료 전시로 뜻깊은 공부를 하고 간다.

한번 와보세요.

자녀들의 교육장으로 훌륭합니다.

 

세종대왕은 재위 기간 동안 유교정치의 기틀을 확립하고 공법(貢法)을

시행하는 등 각종 제도를 정비해 조선왕조의 기반을 굳건히 했다.

또한 한글 창제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문화의 융성에 이바지하고

과학 기술을 크게 발전시키는 한편 축적된 국력을 바탕으로 국토를 넓혔다.

 

 태종의 셋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이다.

비(妃)는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심온(沈溫)의 딸 소헌왕후(昭憲王后)이다.

 

혼천의(渾天儀)

조선 세종 때 만들어진 관측기구로 해와 달 오행성의 위치를

측정하는 데 사용되었다.

현재는 현종 10년(1669년)에 제작된 것이 현재 전해지고 있다.

 

측우기(測雨器)

측우기는 조선 세종 때 처음 만들어져 강우량을 측정하는 기구로

세계 최초의 강우량 측정기이다.

 

앙부일구(해시계)

해 시계는 조선 세종 때 만들어진 시계로 태양 광선에 의해 물체의 그림자가

이동하는 것을 이용한 시계이다.

 앙부일구는 1434년(세종 16)에 처음 만들어진 천문기구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던 해시계의 일종이다.

시계판이 가마솥같이 오목하고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다 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

청동의 오목판 안바닥에는 일곱 개의 세로줄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을 "시가가 선"(時刻線)이라고 한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면서 생기는 그림자가 이 "시각선"에

비치면서 시간을 알 수 있다.

바닥에는 시각선 이외에 열세 개의 가로줄 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24절기를 나타난다.

제일 바깥줄 "동지"의 해 그림자가 다라 가는 줄이며

제일 안쪽 줄은 "하지선"이다.

 

지하 역사 전시장.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지하 전시장"을 가려면

 세종대왕 동상 뒤편에 지하로 내러가는 출입구가 있다.

 

광화문 월대(光化門 月臺)

1395년(태조 4년)에 건립한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탔다.

이후 경복궁 대신 창덕궁과 창경궁을 증건하여 중심 궁궐로 사용하였다.

 

고종이 즉위한 후 흥선대원군은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고자

경복궁을 증건하였다.

동시에 광화문 앞에 월대(月臺)를 넓고 길게 조성하여 경복궁의

권위와 품격을 한층 높였다.

이제 경복궁 복원 사업으로 광화문은 원래 위치에 다시 세우면서

월대(月臺) 일부를 복원하였다.

 

  고종 즉위 40년 칭경 기념비

이 비는 1902년(경무 6년)에 세워졌다.

 

이 비문에는 고종(재위 1863년~1907년)이 즉위한지 40년이 된 것과 51세가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입소한 것,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의 칭호를 쓰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웠다고 쓰여 있다.

 

광화문광장 지하에는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에 대한 교육자료가

상세히 전시되어 있다.

 

광화문광장은 조상의 얼이 살아 숨 쉬는 역사의 공간으로

자녀들의 교육장으로 아주 훌륭하다.

집사람과 함께 조선시대 궁궐 경복궁 관람하고

광화문광장 육조거리 거니는 보람된 하루였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나날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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