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아라리촌은 민속촌 분위기이다.
아라리촌은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애산리 60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아라리촌 옆으로는 맑고 깨끗한 조양강이 굽이쳐 흐르고 정선에는
볼거리 관광지가 많이 있다.
양반이 좋은 줄만 알았던 평민이 양반의 규율을 알고는 돈 주고는
양반을 하지 않겠다는 풍자로 엮으면서 관람객들의 흥취를 돋우고
정선을 알리는 곳으로 안성맞춤이다
전통가옥(기와집, 너와집, 돌집, 굴피집, 지릅집, 귀틀집)의 6채가 있으며
농경사회 때의 사용하던 농기구와 물레방아, 통방아, 연자방아
모습을 보면서 옛 향수에 젖게 한다.
서민들이 애환을 달래며 사랑에 푹 빠졌던 막걸리 주막집도 있어요.
아라리촌은 입장료 외 주차비는 무료이고 전통가옥에서
체험숙박을 할 수 있습니다.
연제: 2011년 10월 17일 누구와: 집사람 날씨: 맑음
초입에 마을의 수호신 장승이 자리하고 있다.
갈림길에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어요.
아라리촌의 입장료와 주차비는 무료.
아라리촌 약도
아라리촌 약도.
아라리촌 전통가옥에서 숙박도 가능하다.
예약은 필수.
아라리촌에 들어서면 장승을 만난다.
지역 민속촌에 온 분위기이다.
장승 이정목.
곳곳에 이정목을 설치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양반전을 풍자하다.
옛날 강원도 정선 땅에 가난한 양반이 살았다.
그는 현명하고 정직한 데다 책읽기를 즐겨 신임군수들 초차
방문할 만큼 인격이 높았다.
부자 상민의 무능력과 부패상을 폭로하고 동시에 관리들의
횡포를 풍자한 해학(웃음)으로 고발하는 형상들이다.
양반전은 조선 후기 신분제의 급격한 변동과 과정에서 발생한
풍자문학 대표작이다.
이 시기는 양반의 다수가 몰락하고 상인들이 부를 축적하는 등
신분제가 요동치고 있었다.
양반전에 등장하는 부자 상민과 몰락해가는 양반이
이를 증명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때 이웃에 살던 부자 상민이 그 빚을 대신 갚아주고
양반의 신분을 사게 되었다.
이윽고 이를 안 군수가 직접 증인이 되어 양반문서를
만들어 주겠다고 하였다.
가난한 양반의 관곡 천 섬을 대신 갚아주고
양반을 사는 부자 상민과 양반 신분을 팔고
목숨을 부지하게 된 것에 감사하고 있는 가난한 양반이다.
그러나 첫 번째로 작성한 문건에서는 양반이 되면 지켜야 할
온갖 형식적 조목들을 나열함으로써 부자 상민을 낙담시켰다.
그러하여 상민 요청에 따라 작성된 2차 문건에서는 양반이
누릴 수 있는 여러 특혜를 적어나갔다.
양반과 상민
양반이 되면 지켜야 할 조목들~
부자 상민이 양반의 빚을 갚아주고 양반의 신분을 사게 된
경위를 알게 된 군수는 이 사실을 문서로 남기기 위해
양반증서를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그리하여 첫 번째로 작성한 문건에는 양반이 지켜야 할
수 십 가지 조목들을 적어 놓았는데 부자 상인은 양반은
신선과 같은 것이 아니냐며 유리하게 고쳐주기를 부탁한다.
하지만 이 문건을 지켜보고 있던 부자 상민은 양반이 도적놈이나
다름없는 것이라며 양반이 되기를 포기했고 그 이후로는 죽을 때까지
양반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경제 능력이 떨어져 관사의 곡식을 빌려
연명했는데 어느덧 그 환곡이 1,000여 섬에 이를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 지방의 관아를 순시하던 관찰사에게 발각되어
마침내 감옥에 갇힐 운명에 처한다.
관사로부터 꾸어간 관곡 천 섬을 한 달 안에 갚지 못하면
감옥에 끌려가게 될 것이라는 판결을 받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양반과 이를 탓하는 양반 아내의 모습을 풍자한다.
굴피집
안방, 사랑방, 도장방과 대청, 정지, 외양간으로 구성된 주거형태이며
원시형 산간지방 가옥으로 정선, 강릉, 양양, 평창 지방의
마을을 찾아볼 수 있다.
피굴집 지붕
굴피집은 참나무(상수리나무) 껍질인 굴피로 지붕을 덮은 집으로
보온이 잘되고 습기를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때문에 겨울에는 매우 춥고
여름에는 비가 많이 오는 기후에 안성맞춤이다.
초정(草亭).
볏짚으로 지은 정자를 말한다.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룻바닥을 지면에서 한층 높게 지었으며
벽이 없고 기둥과 지붕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풍류를 즐기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로서
산수 좋은 높은 곳에 세운다.
초정(草亭) 지붕 서까래 구조.
조양산
계절 따라 변하는 조양산 절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그네
육모정
초정(草亭)보다 더 수려한 위치에 설치된 누정(樓亭) 건축물로
누정이란 경관을 조망하기 편리한 높은 곳에 대(臺)나 바위 언덕,
다락 위에 인위적으로 조성한 건축물을 말한다.
특히 정(亭)이란 중층(中層)의 집 모양을 이루는 누(樓)와 달리 사람이 잠시
정지하여 휴식을 취하면서 주변의 수려한 경관을 완상(玩賞) 하고자
만든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정선 읍내 전체를 바라볼 수 있고 특히 조양강과
계절 따라 변하는 조양산 절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조양강.
엄청 맑은 물이 흐른다.
농기구 창고.
농경사회 때 사용한 농기구.
주막집.
막걸리 생각난다.
굴피집.
굴피집 지붕.
연자방아.
발동기가 없던 옛날 한꺼번에 많은 곡식을 찧거나 밀을 빻을 때
우마(牛馬)의 힘을 이용한 방아이다.
둥글고 판판한 돌판 위에 그보다 작고 둥근 돌을 옆으로 세워 얹어
아래위가 잘 맞닿도록 하고 우마(牛馬)가 끌고 돌린다.
마을마다 하나씩 있어 공동으로 사용하였으며
이곳을 연자방앗간 또는 연자 맷간이라 하였다.
장승 이정목.
방향표시가 잘 되어 있어 찾아가기 쉽다.
돌집.
정선지방의 독특한 가옥 형태로 안방, 윗방, 사랑방, 도장방,
그리고 정지와 외양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돌집은 얇은 판석(板石)을 두께 20㎝ 정도의 돌기와로 지붕을 덮어 올린 집으로
주로 정선지방 산기슭에 매장된 청석맥돌을 파내어 이용하였다.
너와집.
2백 년 이상 자란 소나무 토막을 쪼갠 널판으로 지붕을 이은 정선지방의
전통 민가로서 안방, 건너방, 사랑방, 도장방, 대청, 부엌, 외양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에는 정선지방의 특정적 용구인 "화티"가 있는데 이는 부뚜막 귀퉁이에
진흙을 이겨 쌓은 것으로 두 개의 구멍 중 왼쪽에는 불을 피워 조명을 대신하거나
음식을 끓이는데 쓰고 아래쪽은 불씨 보관용으로 쓰였다.
저릅집.
정선지방의 전통 민가 중 하나로 안방과 윗방, 도장방, 정지,
외양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릅집은 대마(大摩)의 껍질을 벗기고 난 줄기를 짚 대신 이엉으로
이은 집을 일컬으며 단열재로서 기능을 하기 때문에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귀틀집.
목재가 풍부한 산간지대의 주민들이 짓고 살던 원시주거의
한 가지로 안방과 윗방, 정지, 헛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껍질을 벗긴 통나무를 우물 정(井) 자 모양으로 쌓아 올려 벽채를 삼으며
나무 틈새는 진흙으로 메워 짓는다.
많은 적설량에도 견딜 수 있고 온도 유지가 용이할 뿐 아니라 간편하게
지울 수 있어 산간지대의 화전민들이 오래전부터 이용하여 왔다.
이정목 물레방아로 간다.
집사람과 포포존에서~
디딜방아간.
통방아
통방아는 물방아 또는 벼락 방아라고도 하며 확(곡식을 넣는 돌통)
공이(찧는 쁠), 수대 등으로 구성된다.
3~5m 정도의 커다란 통나무를 이용하여 앞쪽에는 공이를 박고,
뛰쪽은 물이 담길 수 있도록 구이통을 판다.
귀대를 통해 구이통 속으로 흘러 들어온 물에 의해 공이가 올라가고
내려가면서 확에 있는 곡식을 찧게 된다.
공이.
3~5m 정도의 커다란 통나무를 이용하여 앞쪽에는 공이를 박고,
뛰쪽은 물이 담길 수 있도록 구이통을 판다.
물레방앗간
물레방아.
물레방아는 큰 나무 바퀴와 물대에 공이를 장치하여 쏟아지는 물이
나무 바퀴를 돌리면 굴대에 꿘 널찍한 나무가 방아채의 한끝을 눌러
번쩍 들러 올렸다가 떨어뜨리면서 공이로 확에 담긴 곡식을 찧도록 되어 있다.
방아채와 공이의 작동이 되기 때문에 사람이 없어도 찧을 수 있으며
공이가 양쪽으로 두 개가 물려있어 엇갈려 찧을 수 있는 것도 있다.
물레방앗간 내부.
돌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는 물레방아이다.
서낭당.
서낭당은 마을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곳이다.
입신출세를 기원하는 장소로써 마을신앙의 모태가 되는
민간 무속의 중심지이다.
일반적인 서낭당의 위치는 마을이 시작되는 진입로 가장자리나
이웃 마을과 연결되는 고갯마루 주변이며 장승이나 벅스와 힘께 세워져 있다.
장승의 기능은
첫째 지역 간의 경계표 구실, 둘째 이정표 구실, 셋째 마을의 수호신 역할이다.
길가나 마을 경계에 있는 장승에는 그것을 기점으로 한 사방의 주요
고을 및 거리를 표시하였다.
장승.
수호신으로 세운 장승은 이정표시나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류의 표시가 없으며
대신 마을의 신앙 대상으로서 주로 액병(厄病)을 빌었다.
석등
양반증서 접수처.
4차 혁명 시대에 조선시대 감회가 새롭다.
정선에 오면 아라리촌 들러보세요.
숙박도 가능하고 볼거리가 좋습니다.
아라리촌 관람하고 소금강을 거쳐 몰운대로 간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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